“와..조상이 도우셨네” 건강프로그램

지금은 없어졌지만 매주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 프로 개그콘서트를 기억하시나요?


개그콘서트의 수많은 코너 중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각 지역 사투리로 수많은 캐치프레이즈를 불러일으킨 ‘박준형의 일상 사투리’였다.

특히 경상도 원어민으로 커밍아웃한 김시덕은 ‘아이를 낳아도’로 인기 절정에 달했다.

개그콘서트에서 일상 사투리를 선보인 뒤 단장 자신이 김시덕을 찾아와 “이제 인생이 바뀔 거야”라고 말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실장은 “당시 지하실을 월세로 살고 있었는데 한 달 만에 29평의 월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발신자가 들을 수 있는 통화 연결음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역시 컬러링이 제일 인기가 많고, 컬러링만으로도 17억 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캐치프레이즈 당사자인 김시덕은 계약을 잘못했기 때문에 채색으로 한 푼도 벌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개그콘서트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코너 맵기를 탄생시킨 김시덕은 개콘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임이 입증됐다.

당시 김시덕은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해 많은 개그맨들이 그의 코너에 합류하기를 원했다.

마빡이 역시 개그맨 김대범, 박준형에게 정종철과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고 제안해 명실상부한 마빡이 4인방이 탄생했다.

2008년 개그콘서트에서 어린 스튜어디스 친구에게 프러포즈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역대 최고 미인과 결혼한 개그맨으로 유명하며 김대장 개대회에서 “애 낳아도”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프러포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큰 인기를 누렸던 그는 2011년 돌연 프로그램에서 자취를 감추며 자취를 감췄다.

그 이유는 희귀불치병인 벡테레프병을 앓아 움직임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김시덕은 한 방송에서 “KBS 건강 프로그램에 가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검진을 받았다. 촬영이 끝나고 의사선생님이 ‘잠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많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자신의 병세에 대해 “나쁜 세균이 몸에 들어오면 면역세포가 싸우지 않느냐. 이것들은 세균과 싸워야 하는데 서로 싸우면서 염증이 생기고 심해지면 척추가 대나무처럼 딱딱해진다. 하지만 새우처럼 딱딱해집니다.” 나는 설명했다.

지병으로 술과 담배를 끊었으며, 치료 후 현재 매우 회복 중이며 차차 방송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김시덕은 현재 건강에 대해 “전혀 문제가 없다”며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모든 약을 끊을 수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확인하는데 약을 끊은 지 7년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개그우먼으로 성공해 가정을 꾸리기까지 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다고 밝혔다.


사생아라고 밝힌 김시덕은 아버지가 자신을 낳아 고향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나를 키우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다시 떠났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 갈 수 없을 때 작은 방에서 살며 우유와 신문 배달을 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워 연탄 한 장도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배고프고 추웠어요. 그런 원시적 빈곤. 그래서 고아원에 있는 친구가 부러웠어요. 따뜻한 곳에서 먹여주고 잘 수 있게 해주니까요.”

“어릴 때부터 아빠 엄마가 고생이 많으신 줄 알고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불쌍했어요.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니 부모님이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걸 깨달았고, 절대 부모처럼 아이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고 말했다.


9살 때 부모님에게 버림받고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이제 중병을 이겨내셨으니 앞으로 많은 방송 활동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